-하늘의 시점
영원 같았던 계절 학기도 끝나고. 본격적으로 여름 방학다운 느긋함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보내고 있었다.
“우리 바다 놀러가자 바다.”
“바다?”
나 미래 공주님은 오늘도 소파에서 알몸으로 뒹굴 거리고 있다. 왜 알몸인지는.. 생략 하도록하자.
“응 여름이고, 덥고 재미있는 일은 하나도 없잖아. 민우랑 에르랑 같이 4명이서 놀러가는 건 어때?”
“흠.. 좋은 생각이긴 하다만.”
바다..라. 그러고 보니 혼자 살게 된 이후론 몇 년 째 놀러가 본 적이 없는 곳이다. 혼자서 사는데 뭐 바다까지 가야할 이유는 그다지 없었으니 그냥 자연히 집에서 선풍기를 틀면서 보내는게 벌써 몇 년째더라..
“원래 혼자 살기 전엔 일년에 가족들끼리 한 번 정도는 바다에 놀러 갔었다구.”
“허어..”
눈을 반짝 반짝 빛내면서 오랜만에 의욕이 가득한 미래를 보고 있자니 ‘귀찮아.’라던가의 대답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뭐, 생각해보면 집에서 이대로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 보다는 밖에 나가서 즐겁게 노는것도 괜찮을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가 걸리는 문제는 그게 아니였다.
“근데 바다까지 운전은 누가하고?”
“너랑 민우랑 번가락 하면서.”
“..........”
왠지 또 나만 죽어라 고생할 것 같은 그런 여행이 될 분위기였다.
-미래의 시선
그렇게 즉흥적으로 시작된 아이디어긴 했지만 하늘은 꽤 열심히 준비하는듯했다. 며칠에 걸쳐서 숙소라던가 여행하기 좋은 장소를 알아보는 한편, 생각보다 한가하지 않은 민우, 에르등과의 스케쥴을 조정하는 등 나름대로 평소와는 다르게 꽤나 본격적 이였다.
그리고 여행당일, 4인용 랜트카까지 준비하는 치밀함엔 나도 좀 놀랐다.
"와아~ 넓다아~."
차안에서 뒹굴 거리면서 좋아하는 에르.
"이렇게까지 준비하지 않으셔도 됐는데.."
머리를 긁적이며 그런 에르를 바라보며 하늘한테 말하는 민우.
"..너답지 않게 왜 이리 적극적이야?"
그리고 그런 하늘의 속을 떠보는 나.
"네 수영복 입은 모습이 보고 싶어서."
"............................"
틀렸어, 이제와선 늦었지만 이 녀석은 정말로 틀렸다. 저질로 가면 이 세상에서 따라올 사람이 확실히 없다. 최악이다, 정말 최악이다.
"왜..왜 그래?"
험악한 표정을 짓고 노려보자 애써 외면하려 노력하지만. 너 죄를 네가 알렸다.
"난 참고로 수영 같은 건 절~대 안 할 거니깐 그리 알아둬."
"뭐?!"
"흥이네요."
절망을 하는 하늘을 뒤로하고 차에 올라탄다.
..정말 최악이라니깐.
-하늘의 시선
여자들은 피곤했는지 어느새 뒷 자석에서 둘 다 잠이 들었고, 나는 휴게소에서 산 호두과자를 간혹 씹어먹으며 온 몸에서 암울한 오오라를 뿜어대며 운전하고 있었다.
"..저 형 괜찮아요?"
"...........................................괜찮아 보이냐 지금?"
"죄..죄송합니다!"
그래, 죄송해야지. 네 아내가 수영복을 입고 있는 모습도 흥미가 없는 건 아니다만, 그래봐야 유부녀일 따름이고(물론 아무리 봐도 중학생보다 조금 나이가 많아 보이는게 신기할 따름이지만) 난 미래의 수영복을 보고 싶었단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크..크흑.."
"우..울지마세요.."
"닥쳐..새꺄.."
"..."
제길, 난 대체 뭘 위해서 싸운걸까. 이 말도 안 되는 불합리함에 해답 따윈 없겠지. 세상은 거짓말이다.. 거짓말 투성이다..! 난 이 세상이 정말로 싫다! 이런 세상 같은거 전부 멸망 시켜버릴꺼야..! 그러니깐..!
..라고 속으로 세상을 한 30번 정도 멸망시킨 나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다에 도착했다는 그런 이야기.
휴가 시즌임에도 조사가 철저하게 조사하고 와서 바다 바로 앞에 괜찮은 방이 두 개인 민박 겸 팬션에 미리 예약을 마치고 왔다.
"바다다!"
"와아~!"
어느새 수영복 차람으로 갈아입은 여성진은 바다를 내다보며 새삼스럽게 감탄사를 뱉는다.
...응? 수영복?
"잠깐 너 수영 안한다고 했잖아!"
어느새 프릴이 달린 하늘색 비키니형 수영복을 입고 아무런 위화감 없이 배경으로 녹아들려고 시도하는 나미래 공주님에게 격렬히 항의한다.
"수영을 안 한다고 했지 수영복을 안 입는다고 한 적은 없는데 말이야."
"...."
"불만이면 갈아입고 오고~"
"아닙니다 아름답습니다! 완벽합니다! 갈아 입지 말아 주세요!"
진심을 담아 애원한다.
"흥, 영광으로 알라고.. 진짜로 말이야."
"저..저기.."
뒤에서 민우가 갑자기 끼어든다.
"응? 왜?"
"어째서 에르는 학교 수영복...?"
"에..에읏..?!"
그러고 보니, 에르는 평범한 남색 디자인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나 나올법한 그런 학교 수영복을 입고 있다. 어디서 배운건지 가슴에는 떡하니 1학년(물론 대학 1학년을 의미하는거 겠지만..) 국제어학과 에르메넬리아 라고 꼼꼼하게 쓰여 있기 까지 하다.
"그..그그 인터넷에서 찾아보니깐 남자들에게 어필을 하려면 이런 수영복을 입으면 좋다고 해서.. 그.. 그.."
얼굴이 새빨게지면서 점점 추락중인 에르.
"확실히 그 차림은 나에겐 스트라이크인 걸."
"될 것 같냐!"
강력하고 아프고.. 굉장히 강하고 아픈 충격이 가운 댓 다리에서부터 전해져온다.
"우..욱.."
"그런 수영복은 일반인 상식 외! 새로 사줄테니깐 다른 걸로 갈아입어!"
"에..에읏.."
"아니.. 난 좋은데.."
민우도 에르한테서 시선을 때지 못하며 멍하니 바라본다
"내가 가만히 못있어!"
"에..에읏 언니 그만.. 그렇게 세게 잡아당기면 아파아~"
..라면서 미래에게 강제로 끌려가는 에르메넬리아(나이20세, 주부)였다.
-미래의 시선
덥다.. 더워서 죽을 것 같다.
주변의 가게에서 적당히 에르의 수영복을 고른 다음(지금은 간단한 원피스형의 레이스가 달린 수영복이다) 적당히 파라솔 밑 그늘에서 느긋하게 선크림을 바르고 엎드려서 뒹굴 거린다.
하늘은 오늘따라 맑고 구름 한 점 없어서 꽤나 7월의 여름햇볕은 직사광선인지라 선크림을 덕지덕지 발라서 몸이 끈적대지만 어쩌랴. 나중에 타서 고생하는 것 보단 났겠지.
"수영 안 할거야?"
한 바탕 수영을 마치고 돌아온 하늘이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안 하는게 아니라 못해."
살짝 부끄럽지만 난 물에 대해서 트라우마가 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장난을 치면서 발목을 잡아서 강제 잠수 시켰다가 꺼내길 반복해서 결국 기절을 한 경력이 있으므로 그 때부터 물에 들어가면 누가 뒤에서 발목을 잡아당길까봐 무서워서 들어가질 못한다.
물론 아버지는 그 때 엄마한테 죽도록 얻어맞았지만.
"그런 이유로 바다는 무서워."
"...뭐 그런 이유라면야 어쩔 수 없네."
..하지만 확실히 이 정도로 더우면 사람은 유혹에 약해지기 마련이다.
"들어가고 싶긴 한데 역시.."
물끄러미 바다를 쳐다본다. 민우랑 장난치면서 놀고 있는 에르라던가 그 외에도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왠지 부럽다.
"내가 같이 들어가 줄까?"
"절대 싫어."
"어째서!"
그야 너라면 분명히 내 트라우마를 가지고 장난치면서 물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 할테니깐.
..라고 말하자
"안 그래!"
하면서 정색하는 하늘, 그러니깐 평소에 행실을 잘해놨으면 얼마나 좋아.
"아무튼 그런 일 절대 없을거라 맹세하니깐."
"..믿어도 돼?"
"나말이지 너한테 대체 얼마나 신용이 없는거냐.."
아마 보증 서달라는 것만큼 없을거야. 라고 속으로 생각 만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달리 하늘은 의외로 착실하게 튜브위에 나를 동동 띄워놓고는 그냥 내가 가고 싶다는 방향으로 이리저리 데리고 다녔을 뿐으로 그 외엔 가끔씩 장난으로 머리에 물을 뿌린다던가 하는 정도로 그냥 얌전하게 놀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지만.
-하늘의 시선
뭐랄까, 나나 미래나 항상 초 자연적인 인과에 의한 농락을 당하는게 분명하다. 안 그러면 뜬금없이 나타난 2미터 짜리 파도에 휩쓸리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안 그래?
아무튼, 갑자기 커다란 파도가 나타나서 휩쓸린 것이다. 정신 차려보니 미래는 파도에 휩쓸려서 저만치에서 꼬르륵 거리면서 가라 안고있다.
"미래 언니!"
"미래야!"
"제길!"
일단 미래를 또 구해야한다.
미친듯이 헤엄을 쳐서 미래가 있는곳까지 간신히 도달해서 미래를 붙들었다. 미래는 공포 때문에 정신이 없는지 계속 허우적대면서 내가 잡아주어도 바둥대며 자꾸 가라앉는다. 계속 미래를 붙잡고 어떻게든 자세를 잡고 물 밖으로 나갈려고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는다.
계속해서 꽤 큰 파도가 밀려오고 점점 숨을 참기가 힘들어진다. 이미 물도 꽤 마신 것 같다.
흐려져가는 의식 속에서 어떻게든 미래를 붙잡는다. 하지만 몸은 점점 가라앉는다.
점점 가라 앉는게 느껴지면서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이미 의식을 잃고 서서히 가라앉는 중인 미래.
그 모습을 보면서 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문득 한심한 생각이 떠오른다.
어째서 나랑 이 아이는 이런 류의 일에 휘말릴까.
좀 더 평범한 연인 사이처럼 지내고 싶었던 것 뿐인데.
.....그만 좀 괴롭히라고...
그 생각을 끝으로 내 의식은 멀어져 간다.
.....아니나 다를까 또 죽진않았다.
정신을 차렸을땐 해변가로 왠 구조요원 남자가 마우스 투 마우스로 인공호흡을 실시하고 있었다.
...남정내의 입술이 닿은거 자체야 불쾌하지만 덕분에 살아난 것같으니 어쩌겠나.
일어나자마자 속이 메스꺼워서 한 차례 바닷물을 전부 토하고 민우가 건내준 제대로된 물을 마신다.
"미..미래는."
"여기있어.."
역시 옆에서 창백한 얼굴로 나를 처다보는 미래.
"...이걸로 세 번째지?"
"응.."
우리 둘다 이젠 조금 지겹다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본다.
"흐에엥 미래 언니이..언니이이..."
에르는 옆에서 신나게 울고있고 민우도 매우 창백한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있다.
"너무 걱정 하지마, 나나 아녀석이나 쉽게 죽진 않으니깐."
"..그러게.. 하지만.."
"응?"
"다신 바다에 안 들어갈꺼야, 평생."
그래, 그런게 정상이겠지.
-미래의 시선.
한바탕 소동이 있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바닷가에서 하루는 점점 저물어간다.
어쨌든 저녁은 낮에 있었던 일과는 별개로 호화롭게 먹었다.
내가 평소에 육식을 즐겨 하는걸 아는 하늘은 고기를 많이 가져왔고, 무엇보다 우리보다도 훨씬 요리를 잘하는 민우와 에르가 둘이서 합작으로 요리를 만들자 너나 할거 없이 일련의 사건으로 지쳐서 공복사태였으므로 맹렬하게 달려들어서 먹어치웠다.
그리고 지금은 파도소리를 들으며 넷이 같이 테라스에 앉아서 조용히 차를 마신다.
"언니.. 괜찮아?"
"응, 밥먹고 나니 확실히 기운이 나."
에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죽을 뻔했는데 밥먹는 것 만으로 기운이 나냐?"
"..제법 익숙하니깐."
민우는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만 나랑 하늘은 서로를 쳐다보면서 가볍게 끄덕인다.
"그럼 저녁도 먹었고 슬슬 자러갈까?"
은근슬쩍 내 방으로 향하는 하늘을 붙잡는다.
"어딜 들어가려고?"
"응? 당연히 나랑 너랑 민우랑 에르랑 각각 방쓰는거 아니였어?"
갸웃거리는 하늘.
"남자 따로 여자 따로인게 당연하잖아!"
"그런게 어디있어?! 우리가 애냐!?"
맹렬하게 항의하는 민우, 하지만 나는 민우에게 적절히 철권을 먹인다.
"크..크윽.."
"아무튼 방 배정은 이렇게 할꺼니깐 불만있으면 나하고 일 대일로 싸워서 이기도록 이상!"
이렇게 못박아두자, 두 사람은 투덜 투덜 거리면서 방으로 들어간다.
"에..에읏.. 언니 너무 한거 아니였을까.."
에르가 조금 미안하단 표정으로 그 둘을 바라본다.
"..후후 내버려둬.."
-하늘의 시선
"제길, 내가 왜 여행지까지 와서 너랑 잡을 자야하는거냐 투덜 투덜."
"..의성어까지 일일이 말하지마요 형, 저도 심란하니깐."
"끄응.."
당연히 잠이 올 리가 없는 나와 민우는 둘 다 불을 끈 채로 천장을 올려다 보고 있다.
"나아쁜 기집애."
"..."
"매일 덮친다고 걷어차기나하고 간지럼 태운다고 때리고, 야한 짓한다고 때리고, 놀리고 괴롭힌다고 때리고.."
"아니, 그건 맞을 짓을 한게 맞는것 같은데.."
"시끄러워."
".."
"말괄량이에 예전엔 그런 주제 억지로 요조숙녀나 연기하고, 본성을 들어낸다음부턴 매일매일 뜯어먹기나 하고... 맨날 날 물먹이고 엿먹이고.. 걱정이나..하게..하..."
졸리다..
"그런..바보..멍..."
에이..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잠결에 뭔가 부드럽게 껴안는게 느껴진다.
..내 옆에 있던 건 민우 일텐데.. 가만 그럼 민우 녀석이 지금 날 껴안고 자는건가!?
벌떡, 하고 몸을 일으킨다.
"에.. 뭐..뭐야?!"
"으..으악 게이다 게이다아아!"
"뭐가 게이야!"
둔탁한 충격.. 이 파괴력과 감촉은...
"미래..?"
"하아.. 진짜 바보아냐.."
분명히 내 옆에선 민우가 자고 있었을 텐데 어째서 네가 곁에 있는거냐..
"....정말로 각방 쓴다는 걸 믿은거야?"
"..."
제길, 또 속은건가.
"민우는 에르 방에, 에르하고 처음부터 짜고 치기로 계획한거였어."
"...악마들.."
"뭐야.. 싫으면 다시 돌아가고?"
어두워서 표정은 잘 안보이지만, 왠지모르게 뾰류퉁한게 느껴진다.
"아니, 가지마세요."
"흥.."
가만히 나란히 누워있자니 갑자기 미래가 내 품으로 뛰어든다.
"윽.."
"..오늘도 또 구해줬네.."
밖에선 파도소리가 조금씩 들려오고 창으론 희미한 달빛이 들어와서 방을 밝힌다. 희미한 달빛에 비친 미래의 모습은.. 아름답다.
"..구해주긴 뭘, 이번에도 꼴사납게 같이 물에 빠졌는데.."
확실히 구해준건 구조요원이지 내가 아니니깐.
"후후.. 그래도 끝까지 살려줄려고 노력했잖아?"
"..그건 그렇지만.."
이여지는 미래의 기습 키스.
"..."
"...정말, 이젠 오빠랑 떨어진단건 생각하기도 힘든걸."
미래의 눈에 살짝 눈물이 고여있다. 하지만 그런 것과 별개로 미래는 얼굴 가득 미소지어보인다.
"..나도 이제 너가 없으면 죽을만큼 괴로울 것 같으니깐."
그런 것이다.
난 미래를 사랑한다.
아직 말로는 표현하기 부끄럽지만, 이젠 서로 10m 이내로 떨어진다는 걸 상상할 수 없을정도로 곁에 잇고 싶다.
"큰 걸 바라지 않아, 앞으로도 지금처럼 계속 곁에 있어줘. 나한텐 그걸로 충분해."
그 다음은.. 더 이상 생각나지 않는다.
정신이 들었을 때, 우린 이미 자연스럽게 이여져 있었고, 둘 다 서로를 꼭 안은 채로 살짝 만족감과 밀려오는 졸음을 느끼며 언제까지나 서로를 바라볼 뿐이였다.
앞으로 얼마나 힘들더라도 이 행복한 시간이 언제까지나 계속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