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빛 미래 16화
-미래의 시선(고정)
그 후로 나는 바로 다음 날 오빠를 찾아갔다.
들어가자마자 무언가 멍하니 생각하는 얼굴로 창을 계속 보는 오빠의 모습을 보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오빠.. 나왔어.”
“...”
반응이 없다. 멍하니 창밖을 처다보고 있을 뿐이다.
“오빠.. 괜찮아?”
“....”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주변에 있는 의자를 아무거나 하나 집어 들어서 자리에 앉는다.
“나 역시 유학 포기하기로 했어. 오빠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는 번뻔하게 유학이라니.. 좀 그렇잖아? 아하하.. 나도 참 못된 여자지?”
“...”
“저기.. 오빠? 듣고 있어?”
그러자 오빠는 나에게 고개를 돌린다. 조금 많이 무서운 표정으로.
“어, 너 못된 여자야.”
“아...”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말이 오빠의 입에서 튀어나와서 당황했다.
“생각해보면 민폐가 따로 없잖아? 그래, 내가 처음에 널 강간한건 잘못 한거라고 쳐, 하지만 그걸 핑계로 나한테서 돈을 갈취해가고 무슨 왕이라도 된 양 부려먹고 갑자기 남의 집에 얹혀살기 시작하질 않나. 이젠 그것도 모자라서 죽을 병까지 옮겨줬잖아?”
“......”
입을 열고 멍한 표정으로 그냥 오빠를 처다볼 수 밖에 없었다.
오빠가 말한 말은 전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오빠 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올꺼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넌 늘 그런 식이야, 남한테 의존만 하려고 하지 대체 자기 스스로 하려는 일이 뭐야?”
“그..그건..”
어째서 이런 말을 하는걸까? 가슴 한 구석이 갑자기 시려온다, 마치 구멍이 뚤려서 바람이 들어오는 듯한 그런 느낌.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해주지 않으면 넌 너가 할 일 조차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거야? 최악이네.”
푹.
무언가 내 가슴을 찌르는 느낌이 몰려온다. 아프다, 괴롭다.
“그..그치만..!”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내 시아를 가린다. 괴롭다.
“우린 연인이잖아!”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거 밖에 없었다.
결국 그런 것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기에, 여태까지 나의 말도 안되는 투정들도 다 합리화가 되어왔던 것이다.
왜냐하면 난 그만큼 하늘을 믿으니깐, 그리고 사랑하니깐.
“그럼 헤어지자.”
“....어..?”
잘못.. 들은거겠지?
“그럼 헤어지자고 말했어. 언제까지나 연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너의 뒷바라지를 전부 해줘야하는거야?”
“...”
“충분하잖아? 집요하게 그렇게까지 종부리 듯이 부려먹어 왔으면 말이야. 이미 강간죄에 해당하는 벌 치고는 너무 지나친거 아니야? 이제와서 그게 억울하면 소송이라도 해버려. 아 물론 내가 그때까지 살아있는단 보장은 없지만.
"아.. 아..“
뭔가 말하고 싶은데 목에 걸려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자꾸만 눈물이 마구 솟구친다. 점점 오빠의 모습이 흐리게 보인다.
“뭐야? 꼴사납게 꺽꺽대지마. 여기서 이제 더 뭘 하겠단건데? 내 인생을 이 만큼 망쳐놨으면 됬잖아? 이젠 손목이라고 그어줄까?”
“아...!...악...!”
말을 할 수가 없다. 너무나도 아프고 괴로워서 뭐라고 말을 할려고 해도 그건 전부 비명소리로 치환이 되어버린다.
오빠는 그런 나를 굉장히 한심하단 표정으로 쳐다보고는 말을 이어간다.
“뭣하면 이 기회에 말해줄게. 너가 정말 싫어, 얼마나 싫냐면 지금 내 몸에 있다는 이 알지도 못하는 이상한 바이러스 보다도 더 기분 나빠. 너 같은걸 사랑한다고 말했던게 후회 되, 내가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 이제와선 생각 나지도 않아.”
“끄윽..끄아..!”
그만.
“그냥 어디 가서 확 목이라도 매버리지 그래? 죽는게 무서워? 걱정 마, 나를 잔뜩 원망하고 죽어버려, 나도 어짜피 죽어서 저승에 가서 평생 지옥에서 구르기라도 해줄테니깐.”
제발 그만.
“그냥 재수없는 개한테 물렸다고 생각해. 어짜피 몸의 순결 하나로 여태까지 무슨 팜프파탈이라도 되는 것 처럼 행동 해왔잖아? 미안하지만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야, 너한테 평생 휘둘리면서 살고싶지 않다고?”
“그만..해..”
내가 쥐어짜낼 수 있는 유일한 단어들이였다.
“싫어, 나 미래. 당장 그 얼굴 꼴도 보기 싫어. 그러니깐 나가란 말이야!”
뚝.
머릿 속에서 무언가 결정적인 것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의식이 흐릿해진다. 눈앞이 캄캄해져 온다.
흐려지는 의식 사이로. 오빠가 당황해하며 침대에서 일어나는게 보인다.
나를 부여잡고 미래야 정신차려 미래야 라고 하는 입모양이 보인다.
뭐야, 바보.. 거짓말이 었던거야?
이왕 독해 질려고 마음먹었으면 끝까지 나쁜 놈 연기를 하란 말이야..
흐려져가는 의식 속에서 쓴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나도 왠지 몰라도 링거를 맞고 있었다. 옆에선 오빠가 앉아있었다.
“...일어났네.”
“...”
“가벼운 발작 증세라고 했으니 일어나면 집에 돌아가도 된다고 의사가 말했었어.”
“...”
“그러니깐 돌아가, 그리고 다신 돌아오지 말아줬으면 해.”
..거짓말쟁이.
“난 이런 놈이라고? 너가 아무리 날 사랑해봐야 난 언제든 널 짚신 버리듯이 버릴 수 있는 더러운 놈이야. 그러니깐 그냥 나같은거 잊어줬으면 좋겠어.”
“야 강 하늘.”
“..뭐.”
“허세도 적당히 부려.”
“...허세 아니야.”
“그래 백 만번 양보해서 난 그렇게 납득하고 넘어갈 수 있어. 하지만 넌 그걸로 괜찮아?”
“뭐가 말이야.”
“시치미 땔 생각 하지마, 진짜로 싫었으면 쓰러지는데 부여잡고 정신차리라고 말할 리가 없잖아?”
“....”
“그리고 굳이 의사한테 링거놔달라고 할 필요도 없고.”
“....”
“..사랑 하잖아?”
“아니야..”
“쓰러져 있는 동안 잘 생각해봤는데, 사실 헤어지고 싶은게 아니잖아? 그저 내가 너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갈길을 못갈까봐 그렇게 심하게 말했던거지?”
“..아니야 진심이라고.”
“거짓말.”
“아니야.”
“날 사랑하잖아!”
팔에 있는 링거주사를 거칠게 뽑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간 아프고 피가 줄줄흐르지만그런건 신경쓰이지 않는다.
찰싹.
오빠의 손이 내 뺨에 날라왔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야!”
“...”
“그래 사랑해! 사랑한단 말이야! 근데 어쩌라고? 죽을 확률이 40%나 되는데 넌 그래도 내곁을 떠나지 않을거잖아! 이렇게 심하게 말을 해도 결국엔 끝까지 내 곁에 남을려고 할꺼잖아!”
“나도 사랑하니깐 그건 당연하잖아!”
“너는 너가 내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하겠지만 난 그 반대야! 나 같은걸 사랑하게 되는 바람에 이렇게 나 없이는 살아갈 수 도 없게 되버린거잖아! 그러니깐...!”
그 이상은 더 말이 나오지 않는지 분노가 가득 담긴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하늘.
“만약 날 정말로 사랑한다면 날 부숴버리기라도 해봐! 날 완전히 망가뜨려서 네 곁을 떠나게 만들면 되잖아!”
퍽.
이번엔 명치에 주먹이 날라왔다.
“우..웁..”
“그게 원하는 거라면 그렇게 해주겠어!”
그 뒤로 이어진 것은 하늘의 일방적인 폭력.
전혀 준비도 되지 않은 내 몸을 강제로 몇 번이고 범한다. 평소의 상냥함, 따뜻함 같은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일방적이 폭력.
아파서 저항하려 할 때마다 하늘의 손이 거침없이 날라왔고. 너무나도 거칠고 잔인한 폭력에 점점 몸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자! 난 너한테 이런 짓도 할 수 있어! 마음만 먹으면 널 언제든지 부술 수 있는 최악의 인간 쓰래기라고!”
“아...아....”
머릿속이 멍하다. 이미 몸의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이 합쳐져서 재 정신이 아니다.
“자!? 어때!? 아프지?! 괴롭지?! 죽을만큼 후회되지?! 하지만 너가 원하던게 이거라면 얼마든지 계속해주겠어! 나 같은거 하고는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을 때까지 철처하게 부숴주겠어!”
“..아..으...아...”
“자 어때! 어떠냐고?!”
하지만, 멀어져 가는 정신 속에서도 할 말은 해야했다.
“좋아..아..”
“...........뭐?”
“나.. 더러운.. 아이니깐.. 인간 쓰래기 같은 짓을 당해도.. 그게 하늘오빠라면.. 느껴버리고 좋아하는.. 최악의.. 변태니깐.. 미안..해...”
“.....”
“미안해.. 오빠...”
“왜..사과 하는거야..! 대체..왜..!”
하늘은 더 거칠게 날 밀어붙인다. 하지만, 이렇게 되었기에 나는 더욱 말할 수 있었다.
“사랑..하니깐..”
멈칫.
오빠가 몸을 멈춘다. 깔려있던 등 뒤로 물방울이 하나 둘 떨어진다.
“으흑.. 미래..야.. 미안해.. 미안해..”
“아니야 내가 미안해.. 내가 미안해...”
엉망진창이 되버린 내 몸을 오빠가 꼭 부여잡고 안아준다.
“따뜻해..”
“뭐가 따뜻 하단거야..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만든 사람이 안아주는게..”
“그치만 따뜻해.. 그러니깐 안아줘..”
나도 참 바보 같다. 조금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줘도 되는데. 몸은 커녕 머릿 속도 그런걸 허락하지 않는다.
정말로, 나에겐 이 사람밖엔 없구나-라고 다시 한번 마음 속 깊이 새긴다.
“더 안아줘, 앞으로 이 온기를 느낄 수 없다면.. 오늘 잔뜩 느낄꺼니깐..”
“미래야.. 미래야.. 사랑..해..”
눈물 투성이에 아프고 괴로운데도 사람은 이런 짓을 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렇게 우리 둘 다 계속해서 몸을 섞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지쳐서 잠들어버렸다.
그리고 지금, 우리 둘 다 조금 조금 내리는 첫 눈을 맞으면서 기대고있다.
“미래야..”
“..응..”
“역시, 헤어지자..”
“...”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괴로운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오빠가 살아날 확률이 조금이라도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사랑하니깐, 헤어지자고 말할 수 있는거겠지.
한숨을 크게 들이쉰다. 왈칵 하고 눈물이 쏟아져 나올것같지만 간신히 괴로운 마음을 억누르며 대답한다.
“대신에.. 약속하나 해줘.”
“무슨 약속?”
“만약에 오빠가 살아나면 말이야. 그땐 제일 먼저 나한테 연락 해주기.”
“..그건 당연한거 잖아.”
..당연한거지만..
“그런건 중요하지 않으니깐 약속해!”
“..응..”
“죽어버리면.. 두고두고 미워할꺼야.. 오늘 몫.. 꽤 아팠단 말이야.”
“...미안..”
나를 꼭 껴안으려고 하는 오빠를 가볍게 밀어낸 다음 등을 돌린다.
“오지마..”
“...”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는 서로 남인거니깐, 오빠가 날 여기서 안아줘 버리면 그렇게 할 수 없을것 같으니깐..”
“응..”
“서로 뒤돌아보지 말고 걸어가자. 난 절대로 안 돌아 볼꺼니깐.”
“알았어.”
그리고 난 오빠에게서 점점 멀어진다. 뒤 돌아보고 싶지만 억지로 참아보인다.
하지만.. 결국 한번 돌아보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곳에 이미 오빠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