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빛 미래 8화
-미래의 시선
생각해보면 나는 역시 혼자서 있는 건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어렸을 땐 가족이 항상 곁에서 있어주었고, 난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부족함 없이 자라왔다고 생각한다.
다만, 난 늘 쌍둥이 동생인 민우하고 비교되는 것에 굉장히 열등감을 느끼면서 살아왔다. 성적이나 운동신경이나 그런건 전부 내가 민우보다 위지만, 내 주변엔 항상 친한 친구도 없었고 늘 혼자였다. 그런 반면 민우는 항상 친구들에게 둘러 쌓여있고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즐겁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민우가 너무나도 부러웠다. 그래서 민우한테 지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운동했다. 그래서 그런거에서 민우를 이길 수 있다는걸 위안으로 삼으며 나는 남들한테 인정받고 싶어서 더 노력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내 인생은 민우가 에르하고 연인이 된 다음부터 크게 움직여버렸다. 처음 그 둘이 이여졌을 때 나는 그것에 큰 의의를 두지 않으려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나는 어느샌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어른이 되어버렸단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각자 자기가 할 일을 찾아서 하고 가정을 꾸려나갈 만큼 어른이 되어있었고, 나 혼자서 아직 투정부리는 우리 집의 유일한 어린아이란 걸 알았을 때, 나는 여태까지 너무나도 행복하게 살던 집에서 떠나기로 결심했다.
고등학교 졸업식이 끝나고 얼마 후, 나는 부모님과 독립 선언(?)에 대해서 정면으로 대립을했다.
부모님은 당연히 처음엔 안 된다고 하셨다. 특히 어머니는 굉장히 슬퍼하셨다. 집에서 부족함이 없이 여태까지 잘 살아왔는데 왜 굳이 힘든 길을 택해서 나가려하느냐, 우리가 너한테 못해준 부족한 점이 있었냐는 추궁을 했지만, 나는 그래서 더욱 잘라서 대답했다.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기에 나는 나갈 것.’ 이라고.
부모님도, 민우도 에르도 전부 자기들이 원하는 미래를 향해서 하나 둘 걸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난 항상 뒤쳐져있었고 외톨이었다. 이대론 아무것도 평생 이 안락함 속에서 아무런 고생도 안하고 온실 속의 화초처럼 영원히 부모님이 주는 안락함 속에서 살아갈까봐 두려웠다.
그런 내 생각을 이해해 준건 놀랍게도 민우였다.
또 평소처럼 투정 부리지 말고 부모님 속을 썪히지 말라고 할 줄 알았던 민우는 그전날 밤 나와 부모님이 이야기하는걸 옆에서 다 듣고는 그 다음날 밤 부모님을 몇 시간에 걸쳐서 설득해주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다음날 어렵사리 독립해서 나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그리고 대학에 합격해서 적당한 하숙집도 알아냈고, 혼자서 살아갈 준비를 만반으로 하고 '아 나도 드디어 어른이 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뿌듯했다.
하지만 그렇게 혼자서 열심히 살아보겠단 결심도 결국 하늘과 만나면서 꺾여 버렸고. 나는 지금에 와서 다시 투정부리는 어린애로 돌아왔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게 빈말이든 진심이든 내가 ‘좋다고’말해준건 하늘이 처음이었다.
그게 육체관계를 원한 하늘의 거짓말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이런 성격의 날 좋다고 말해준건 처음이었고, 난 그런 하늘에게 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독립한지 3개월도 안 되서 하늘의 집에서 얹혀살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대론 안 된다, 내가 좀 더 강해져서 하늘한테 의존하지 않아도 혼자서 열심히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이대론 그렇게 까지 부모님 가슴에 못을 박아가면서 집에서 떠난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직은 좀 더 하늘에게 어리광 피고 싶다는 생각도 계속 하고 있다. 결국 애매모호하게 결정을 못하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무사태평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나였다.
-하늘의 시선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군대에서 말년을 지내면서 잉여 롭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갑자기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렸다.
원인은 그냥 어디에나 있을법한 흔한 자동차 사고.
엄청나게 울었던 것만 기억한다.
거의 20년 동안 난 부모님한테 외동아들이라는 이유로 많이 사랑받으면서 자라왔고, 나 역시 부모님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로 사람 사는 일은 모른다고 했던가. 부모님은 그렇게 너무나도 허무하게 돌아가셔 버린 것이다.
원래부터 가족이 적은 편이였던 나는 혼자서 살아가는 법 따위를 알 리가 없었다. 제대하기 전까진 그 현실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제대하고 나서 돌아온 집안엔 아무도 없다는 현실이 다시 느껴지자 뼈에 사무칠 만큼 괴로웠다.
더 이상 게임을 그만하고 제대로 공부 좀 하라고 걱정해주시는 아버지도 없다.
저 녀석 누가 데려가냐고 걱정하시면서도 항상 뒤에서 힘써주시는 어머니도 없다.
아무 것도 없는 나 혼자만의 38평짜리 집은 너무나도 넓고 외로웠다.
그래서 잊으려고 노력했다, 복학해서 사람들하고 어울려보기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해봤지만 역시 사라진 가족의 공백은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미래를 만났다.
처음엔, 살기위해서 그녀랑 관계를 가졌다.
하지만, 그러던 도중 그때만큼이라도 좋으니 연인 행세를 하자는 그 아이의 말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어디까지나 미래에겐 그건 ‘연인 행세’ 였을 테지만. 난 아직도 그때의 미래의 따뜻한 한 마디 한 마디를 잊지 못한다.
그리고 나서부턴.. 미래한테 완전히 빠져버렸다. 나에게 있어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애정 결핍에 가까운 증세를 치료해주고 다시 누군가를 위해 살고 싶다는 기분을 느끼게해준건 다름아닌 미래였으니깐.
그래서 허락받지 못할 걸 알면서도 그녀를 손에 넣고 싶었다.
나에게 다른 방법은 모르니깐 그녀를 겁탈한다는 최악의 형태로.
하지만 정말 놀랍게도, 그녀는 그런 나를 받아 주었다. 그리고 나란 인간을 좋아해준다. 내가 바래왔던 꿈같은 나날들이 계속된다. 나는 그래서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다시 그녀가 만에 하나 사라진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 상상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내 목숨을 벼려도 좋으니 미래가 곤경에 빠질 때마다 지켜주고 싶었다.
그녀가 곁에 있어 주는게 나에게 있어 삶의 의미나 다름 없으니깐.
-미래의 시선
물론 그렇다고 난 하늘에게서 독립해나갈 생각은 없다.
이건..음.. 말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독립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내가 선택한 사람이다. 적어도 아직까진 헤어질 생각 같은 건 없고 앞으로도 이렇게 지낼 수 있다면 나에겐 더없는 행복일 것이다.
그건.. 내가 하늘을 좋아하기 때문이니깐.
같이 사는 것 정도야 오케이가 아닐까.
물론 지금처럼 하늘에게 너무 의존하면서 사는 것도 문제지만.
어렸을 때 엄마는 자주 말씀하셨다. 연애는 어느 한 쪽한테 의존 하는게 아니라 서로 의지하는거 라고.
지금 이대로의 형태는 내가 하늘에게 너무 의존하고 있다. 물론 하늘은 그런 사실에 대해서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날 신경써주겠지만.. 다시 말하지만 그래선 내가 독립한 의미가 전혀 없다.
어른이 되고 싶다.
나이뿐만 아니라 정신도 어름이 되고 싶다.. 몸은.............................무리인 듯 하니깐.
가뜩이나 몸도 작아서 초등학생으로 오인 받는 판에 내가 생각해도 나이에 맞지 않게 유치하게 놀면 참 장관이 아닐까..
어른이 되어 부모님처럼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싶다.
지금은 그게 나의 가장 큰 바람이다.
하지만, 오늘도 결국 하늘에게 잔뜩 어리광이나 부리고 실없는 소리나 늘어놓다가 하루를 보내버렸다.
정말 이래도 되는걸까..
-하늘의 시선.
미래의 어리광은 어디까지나 어리광이다.
예전 납치 사건 이후론 딱히 못들어줄 정도의 금전적인 요구를 해오는 것도 아니고, 주로 어깨가 쑤시니 주물러 달라, 맛있는게 먹고 싶으니 만들어 달라든가의 사소한 요구였다.
싫지 않았다.
미래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미래는 나에게 있어서 이제 작은 여동생을 얻은 그런 기분이었다.
물론, 만약 여동생이라면 같이 야한 짓은 안하겠지만.
미래는 예나 지금이나 유난히 간지럼 태우는 것에 내성이 없고 등은 특히나 내성이 없다. 본인 스스로도 특이한 채질이라고 인정하는 지라 나는 특히나 악용해먹고 있지만, 조금 비겁하단 느낌도 없는건 아니다.
하지만, 미래는 솔직하지 않아서 자기 입으론 절대로 단도직입적으로 야한 짓 하고 싶습니다. 라고 말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내가 늘 미래를 덮치는 변태의 입장이 되고있는 건 다소 불만스럽지만.
미래는 사실 전에도 언급했듯이 생각보다는 굉장히 야한아이다. 아닌 척 하려고 노력할 뿐.
그 증거로 한 일주일동안 미래를 덮치거나 괴롭히지 않고 얌전히 냅뒀더니 은근슬쩍 툴툴 거리는 빈도가 늘어난다던가 덮쳐달라는 말을 빙 둘려서 맨 마지막엔 ‘알아서 생각해 그 의미정도는!’이라고 말하면서 심술을 부린다던가.
사실 저러는 주제에 막상 시작하면 자기가 더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건 기본이고 기본적으로 내가 정력이 약 한편이 아님에도 불과하고 미래한테 쥐어 짜이는듯한 감각은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분명히.
-미래의 시선.
고백한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꽤나 성적인 것에 대한 내성이 매우 적다.
유전적으로 우리집안 여자들은 등이 성감대라는 괴상한 유전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특히나 등을 간질이는 건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약했다.(아버지가 자주 괴롭히곤 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난 스킨십을 별로 살면서 해본적이 없다.
아버지는 장난이 과해서 맨날 엄마한테 두들겨 맞는게 일상이였고, 어머니는 가끔가다 꼭 안아주긴 했지만
매일매일 에르가 달라 붙긴 했었지만, 집을 나와선 그다지 그것조차도 없는 편이였다.
생각해보면 아예 남자들이 나한테 접근했던 적이 그닥 없으니깐.
그래서 사실 하늘과 관계를 가지는 것 보다도 하늘의 품에 안겨 있는게 굉장히 기분 좋다.
아무생각도 할 필요 없고 그냥 멍하니 따뜻함을 느끼는게 기분 좋다. 그래서 자꾸 어린애 같이 안아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평소엔 부끄러워서 말을 도저히 못하지만 한층 풀리게되면(?)입에서 평소엔 절때 나오지 않는 호칭인 오빠란 호칭이 나온다.
이건 민우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나는 사실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편이다. 그러기에 정말 중요한 순간이 왔을때 난 항상 민우를 오빠라고 부른 것같다.
적어도 하늘은 지금 나에게 있어서 의존할 수 있는 상대.
하지만 하늘은 과연 날 의존할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해주는걸까..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하늘이 들어왔다.
“아..더워 아이스크림 사왔으니깐.”
“응 수고했어 헤헷..”
어쨌든 아이스크림을 먹기로한다. 아직은 역시 여름이라 그런지 덥다.
“그러고보니 미래야.”
“응?”
“너 츤데레 아니야?”
츤데레..가 뭐지? 일단 우리나라 말은 아닌 것같다.
“츤데레가 뭐야?”
“일본어로 틱틱거리다 할때 츤츤대다 라고 하고 좋아좋아하는거 데레데레하다고 하는데 그걸 합쳐서 평소엔 틱틱대면서 둘만 있을땐 좋아좋아 거리는거.”
“..뭐야 그게..”
뭔가 하늘이 말한 지식인 만큼 분명 어느 부분에대해서 편중 되어있는 지식이겠지만, 그래도 뭔가 정곡을 찌르는 느낌이다.
“그도 그럴게 넌 평소에 틱틱대고 냉랑하지만 정작 야한짓을하면 오빠~하면서 부비부비대잖아?”
“...윽.. 그..그런거 말하지마!”
“아 또 츤츤댄다.”
...............우와 강하늘 최악이야 역시, 이런 식으로 사람의 정곡을 찌를줄이야.
“미래는 츤데레레요~ 츤데레레요~ 아 거봐 얼굴 빨개졌다.”
...이젠 본격적으로 놀리기 까지..
“그래.. 나는 츤데레야 츤데레일지도 모르지만..!”
“모르지만..?”
“너한텐 절대로 데레 안해!”
손에 쥐고있던 아이스크림을 투척한다.
“으..으악!”
눈 한가운데 먹다만 아이스크림이 처박혀서 바닥을 구르는 하늘.
“너같은거 정말 싫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뒤돌아서서 방문을 닫으면서 나도 모르게 씁쓸하게 웃어버리는 바보같은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