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빛 미래 4화
-미래의 시점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아무리 내가 건성주의에 좀 깊이 생각하는 걸 귀찮아하는 타입이라고 해도, 한번 목숨을 구해줬단 이유랑 상성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남자와 사귈 정도로 멍텅구리는 아니다. 고로 처음에 사귀기로 한건 어디까지나 “이 사람이 대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더 파악하고 싶어서였다.
“음, 이것도 사주고 저것도 사주고.. 아 이것도 마음에 드는걸.”
..그래서 나 나 미래님께서 생각해낸 방법은 우선 죽어라 부려먹고 굴리고 멋대로 행동하기였다. 만약 진심으로 이 바보가 날 좋아한다면, 죽어라 굴리던 어떻게 대우를 당하던 따라붙을거란 생각에 말이다.
“.20, 30, 40.. 크윽..”
“응? 왜 그래?”
그래서 우선은 평소에 엄청 사고 싶었던 옷을 죽어라 구매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죄의식? 그런게 있을 리가 없지!
"아..아니야.“
“응응, 아무 일도 없는거지?”
“응..”
기회는 이때다! 란 느낌으로 마구마구 사들인다. 사실 이 변태 강간마가 저지른 짓에 비하면 이 정도는 가벼운 거 아닐려나? 란 느낌으로.
-하늘의 시선.
악마..랑 만났다.
실제로 악마라는게 난 그때까지 존재하는지 몰랐었지만, 내 눈앞에 말도 안 되는 량의 옷을 마구마구 산 뒤, 악세사리도 비싼 걸로 실컷 산 다음, 마지막으로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나도 평소에 안 먹는 비싼 메뉴만 죽어라 시켜서 먹고 있는 이 여자아이는 분명 악마가 분명했다.
“저기.. 나 진짜로 돈이..”
“성범죄자~ 은팔찌~♬”
“..아무것도 아닙니다.”
체크메이트다.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있을 리가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간음죄를 겨우 120만원의 상당의 돈으로 합의하고 넘어가는거라 치면 그렇게까지 큰 댓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가혹하다, 아니 잔인하다.
두 달치 생활비가 불과 반나절도 안되서 전부 증발하고 있다. 눈 앞의 이 악마가 전부 거덜내고 있다.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하고 싶지만.. 슬프게도 자업자득인고로 어쩌겠나. 실~컷 털려야지.
“저기 근데 미래야..”
“응?”
“너, 왜 갑자기 경어를 생략하고, 그냥 야, 야 하면서 부르는거야?”
“불만이야?”
악의 따위 담기지 않은 100%의 천연 아름다운 미소로 나를 쳐다보는 저 아이에게 내가 뭐라고 말하겠는가.
“아닙니다.”
“흥흥~ 아이스크림~”
“..거기에 더 시킬려고?”
“응, 여기 슈퍼 디럭스 딸기 선데이로.”
“..윽..”
요 며칠은 계속 이런 식이였다. 전화해서 “야 집 앞이니깐 10분 내로 튀어나와.”로 시작해서 이곳저곳 끌려 다니면서 미래의 각종 소비품의 물주로써 이걸 사주고 저걸 사주고 한 다음 사소하게 몇 마디 잡담하다가 헤어지고.. 이런 나날의 반복이였다.
속았다, 제기랄.
이런 아이인줄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덮치거나 하진 않았을텐데. 하지만 어쩌랴, 사람 보는 눈이 없는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고, 이래저래 결국 잘못을 저지른 것 역시 나 자신인걸.
하지만 싫진 않았다. 왜 인진 나도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흘러가는 시간들이 그렇게 괴롭지만은 않았다. 아니, 어느 면에선 오히려 즐기고 있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그렇게 스페셜 뭐시기 선데이까지 나한테서 전부 착취하고 나 미래 공주님께선 내가 계산하는 동안 먼저 나가서 바람을 쐬시겠다고 한다.
-미래의 시점.
일이 꼬인 건 거기서 부터다. 잠시 가계를 나와서 산책을 하고 있는데. 정말 정말 어이없게도, 그리고 운이 없게도 납치를 당해버린 것이다.
왜 흔히 말하는 묻지마 식 납치라고 하면 설명이 되려나? 갑자기 뒤에서 봉고한대가 휙 나타나서는 나를 강제로 태우곤 출발한 것이다.
황당해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직 사태파악조차 잘 안 됬지만. 어쨌든 반 강제로 차에 태워져선 어디론가 끌려가는 것이다. 나는 마구 바둥 거렸지만 곧 몇 명의 남자들에 의해서 강제로 묶여지고 입을 봉해진 채로 의자 한 구석에 난폭하게 던져졌다.
산에서 조난 당한다음에는 강간에 그 다음엔 납치라니. 내 인생 자체가 굉장히 파란 만장하다고 지금 와선 쓴 웃음을 지으며 회고하지만, 그때 당시엔 너무 너무 혼란스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두려웠다.
난 어떻게 되는가, 대체 이 사람들은 왜 날 납치 한건가. 난 설마 살해 당하는거 아닌가.
등등의 생각이 무럭 무럭 떠오른다.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납치 당했을 때의 특유의 공포-정말 이렇게 밖엔 설명 못하겠다. 이 기분이 궁금하면 직접 납치 당해보도록!-를 느끼며 그저 아무것도 못한 채로 부들부들 떨면서 조용히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저..저 미친놈!?”
“뭐야 저거?!”
차에 타고 있던 납치범들이 갑자기 죄다 경악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강 하늘군은 당시 어디선가 빌린 자전거-정말로 자전거다!-로 아무리 봉고라지만 시속 60이상으로 달리는 차를 추격하고 있던 것이다! 저게 인간인가!?
게다가 어디서 구했는진 몰라도 쓰레기통 뚜껑-여러분이 상상하는 그 쓰레기통 뚜껑이 맞다!-으로 봉고차 사납게 내려쳐서 유리창을 박살낸 다음 자전거에 탄 채로 유리창에 한 손을 매달곤 질질질 끌려가며 외치는 것이다.
“야 이 미친놈들아! 당장 미래를 돌려줘!”
...미친놈은 너잖아. 라고 속으로 항의하는 납치당한 것치곤 어찌 보면 나름 속편했던 나였다.
-하늘의 시선
묻지마 납치..라는게 실제로 내 눈앞에서 벌어 진다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지만, 어쨌든 내가 계산을 끝마치고 나오는데 미래가 강제로 왠 봉고에 태워져서 납치 당하는게 아닌가.
급한 대로, 길거리에 체인을 안 걸어둔 자전거를 아무거나 주워 타고-미안 자전거 주인!-그 주변에 있던 쓰레기통 뚜껑을 들고 차를 마구 쫒아가서 유리창에 쓰레기통 뚜껑을 일방 적으로 내려치면서 계속 욕지거리를 한다.
“야 이 썅놈들아! 미래 돌려달라고! 야!”
쓰레기통 뚜껑이 찌그러지고 손에는 피가 맻힐 정도로 사납게 내려쳤지만, 미래를 납치한 저 자동차는 멈추질 않는다. 결국 내려치는 완력에 이기지 못하고 유리창이 하나 둘 부숴지긴했지만. 차는 계속해서 달린다.
시간은 늦은 저녁, 경찰에는 신고하고 난 뒤지만, 이대로는 미래가 사라진다. 내가 지금 쫒아가지 않으면, 어쩌면 다시는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강 하늘, 22년 평생 제대로 된 애인 하나 없고. 제대로 된 사랑 한번 못해본 바보 멍청이에 최근엔 강간마 타이틀까지 붙은 인생 막장의 청년이지만, 그래도 이건 싫었다, 그렇게 심한 짓을 당하고도 자신을 파멸 시키긴 커녕, 어떠한 형태로라도 사귀어 준다고 말해준 아이를 눈앞에서 잃어버리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죽어라 내달리고, 내리치고, 매달리며 소리쳤다.
“미래를 돌려달라고! 돌려달란 말이야!”
집요하게 매달린 결과, 봉고는 갑자기 어둑한 건설 현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문제의 납치범들이 차에서 하나 둘 내리기 시작했다.
-미래의 시선
그 뒤로 이어진 건 일방적인 폭력이다. 그야 말로 복날에 개 패듯이 신나게 두들겨 맞는 강하늘 군이었다. 정말, 그땐 저러다가 죽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각하게 두들겨 맞는다.
하긴, 저 인간은 ‘시속70으로 달리는 차를 자전거로 쫓아온 다음 그 후로 유리창에 매달린 채로 몇km를 더 내달린 것’이다.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그 상황에서 체력은 이미 바닥 일테고, 싸울 기력 조차 없는게 당연하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나를 향해 기어서 온다. 그리고는 구속 되어있는 나를 어떻게든 풀어주려고 한다. 남자들의 몰매를 맞아가면서.
“도망.. 도망쳐..”
어찌어찌 손발이 자유로워진 나에게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도망치라고 하는 녀석이였다.
괜스레 막 눈물이 흐른다. 대체 왜 이렇게 까지 하는 거야, 이렇게 까지 안 해도 되는데.
“이 바보야, 대체 왜 이렇게 까지.. 한거야?!”
“..도망..쳐..미래야.. 도망..”
그 말을 끝으로 녀석은 기절 해버렸다. 그런데도 남자들의 폭력은 멈추지 않는다.
바보.
멍청이.
강간마.
변태.
..바보.. 바보..
계속 울면서 녀석을 책망하지만 녀석은 그대로 기절해서 깨어나지 않는다. 혹시 죽은게 아닐까 생각 될 정도로 미동도 하질 않는다.
어떻게든 녀석에 의해서 풀려 난 다음 손발이 자유로워진 나는 주변에 있던 각목을 하나 집어 든다. 그리고,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내 연인을 떡이 되도록 팬 남자 세 명에게 달려든다.
-하늘의 시선.
그 뒤론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렸을 땐 온몸에 붕대가 감긴 채로 침대에 누워있었고, 미래가 머리맡에서 엎드려서 잠들어 있었다.
“....”
다행히도 살아있는 것 같다, 적당히..가 아니라 죽을 만큼 아프긴 하지만.
성한 손으로 자고 있는 미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미래는 괴로운 신음소리를 흘리더니 눈을 뜬다.
“아, 미안 깨웠어?”
“...아니, 괜찮아.”
미래는 부스스 한 얼굴로 대답하며 몸을 상체를 일으켜 세운다.
“입가에 침 닦아.”
“윽..”
스읍 하고 침을 닦고는 머리를 대강 정돈하고 날 바라보는 미래. 눈은 퉁퉁 부어있고 새빨갛다.
“뭐야, 설마 내가 걱정되서 계속 운거야?”
“아..아니거든?!”
이 녀석, 뭔가 숨기는 게 서툴다. 얼굴에 다 들어난다고.
“..그보다 괜찮은 거야? 다행히도 치명적인 상처는 없었다고 하는데.”
“아, 음.. 죽을만큼 아파.”
“..으...”
고개를 푹 숙이고 괴로워하는 미래.
아무래도 책임감을 느끼는걸까 이 녀석.
하지만, 그보다도 더 궁금한게 있었다. 내가 미래를 풀어주고 나서 경찰이 즉각 오진 않았던 것 같은데. 어떻게 이 아이는 무사한거지?
..라고 물어보자.
“..두들겨 팼지 당연히.”
“엥?”
잠깐, 그러니깐 어딜 봐도 초등학생으로 안 보이는 키와 외모의 소유자인 이 여자아이가 건장한 남자 3명을 상대로 이겼단 말인가?!
아니, 그럼 이상하잖아?! 처음에 납치는 왜 당한거야!?
“..그..그건, 뒤에서 비겁하게 기습해서 묶어버리니 아무리 나라도 상황판단이 될 리가 없잖아. 그치만 정면에서 싸움을 걸면 아무리 머릿 수가 많아도 전부 때려죽일 자신이 있다고?”
“....”
사족으로, 미래를 납치한 범인들은 나중에 경찰 조사 때 증언을 하면서 딱 한번 마주쳤고, 미래를 마주치자마자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살려주세요. 히익.“을 연발하며 부들부들 떨기 까지했다.
대체 뭘한거냐.
다시 돌아가서.
“아무튼 너한테 별일 없어서 정말로 다행이야.”
아파 죽겠지만 씨익 웃으면서 미래를 쓰다듬는다.
“...웃는거 기분나빠.”
“으으으윽..!”
상처부위를 꾹 누르면서 인상을 팍 쓰는 미래.
“..정말, 다시는 이런 짓 하면 용서 안할꺼니깐..”
미래는 곧 표정을 바꿔 금방이라도 울듯 한 표정으로 나를 처다본다.
“몇 번이라도 할꺼야. 겨우 연인 사이로 인정 받았는데 납치같은 것 때문에 허무하게 끝날까보냐..”
“쓸때없이 폼 잡지마 멋없어.”
“윽..”
너무 냉랑하잖아..
“..하지만..”
“...?”
그 다음은 잠깐 기억나지 않는다.
미래가 갑자기 얼굴을 들이밀었고, 굉장히 부드럽고 달콤한 감촉이 입술에 닿았단 것 정도밖에는 말이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연인으로써 인정 받는 시험(?)은 무사히 끝났다. 물론, 나는 전치 한달이라서 병원에 한달내내 입원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수업을 듣지 못해서 지난 번에 언급했듯이 수업을 듣지 못해서 보충 강의를 받아야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뭐 후회는 하지 않는다.
이제 그 후에 어떻게 됬는지는.. 다음시간에!